[하루수다] ‘쐬주’는 배신하지 않았다

하루 / 기사승인 : 2023-02-28 09: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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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동반자 ‘소주’, 항상 함께 해주길

필자 하루의 ‘하루수다’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루의 수다를 푸는 형식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특히 하루는 일본어로 ‘봄’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 하루와 함께 일상생활의 수다를 풀어볼까 합니다. (편집자의 주)

  출처=해브투뉴스

 

서민의 대표적인 술인 소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원재료 값 상승으로 소주 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업계측 주장에 따라 소주 가격이 또 한 번 오른다. 식당이나 주점에서 소주 한 병 마시려면 이제 6,000원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물가, 저성장 경제 속에서 소득은 줄고 물가는 춤을 추는 중이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서민들의 시름이 깊다.
소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은 찾는 애용주다. ‘밥 한끼 할래요?’의 다른 말로 ‘소주 한 잔 하실래요?’가 더 살갑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마주 앉아 한 두잔 들이키는 소주는 ‘왕후의 밥’ 만큼이나 황홀하다.

때로는 고된 노동 끝에 찾아오는 심신의 피로를 살포시 달래준다. 적당히 마시면 세상 가장 친절한 친구가 되어 준다. 그만큼 사연 많은 술이다. 그런데 선술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이제는 밥이랑 소주 값을 합쳐 2만원이나 지불해야 한다.
마트에서 술을 사 집에서 마시는 사람이 느는 이유다. 내 좋은 친구가 갑자기 콧대가 높아져 으스대는 모습이랄까. 서민의 단짝은 어디가고 야금야금 쌈짓돈을 탐한다.

주류가격 인상은 몇 년 새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소주 업체들에 주정을 판매하는 대한주정판매가 주정 가격을 7.8% 인상하자 업체들은 같은 달 일제히 출고가를 인상했다. 문제는 주류의 출고 가격 인상 폭에 비해 식당이나 주점에서 파는 가격이 곱절 이상 뛴다는 거다.

실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출고가는 200원도 안 올랐는데, 그 사이 식당에서 파는 소주 판매가는 4,000원에서 6,000원으로 대폭 올랐다. 6,000원에 소주를 팔면 식당 주인 손에는 4,000원 넘게 남는다. 이익폭이 상당히 크다. 식당 주인은 그래도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임대료, 인건비, 가스비, 전기료 뭐 하나 오르지 않은 것이 없어서 소주를 팔아도 딱히 폭리를 취할 수 없는 구조란다.

애먼 식당주인만 욕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애주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주 알코올 도수는 낮아지는데 알코올 원료가 되는 주정(소주의 원액으로 희석을 많이 할수록 원가가 낮아지는) 가격은 낮아지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가격 인상을 지속해 주류 업체의 영업이익만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최근 정부에서는 소주값 인상을 마뜩잖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내겐 소주하면 늘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서른 넷 나이에 요절한 김소진이라는 작가다. 그는 소주를 ‘쐬주’로 표현했다. 네 권의 소설집과 장편 2권 등 세상에 남겨진 그의 작품은 몇 없다. 그가 쓴 소설집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아, 쐬주병의 비어버린 밑바닥을 맨정신으로 보는 일만큼 쓸쓸하고 또 소름끼치도록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쐬주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중략) 혹 덧없는 사랑 때문에 혹 권태 때문에 혹 허영 때문에 속세를 저주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쐬주만한 친구도 더 이상 없을 성 싶었다”

작가는 도시 서민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시선을 작품 전반에 풀어냈다. 소주를 ‘쐬주’라 표현한 것도 소주 한 잔에서 오는 되센 느낌을 얘기하고 싶어서일지도. 서민들에게 소주는 그냥 순하게 발음하는 ‘소주’가 아니라 목을 넘기며 뱉어내는 쓰디 쓴 회환과 감탄사의 된발음이 어울릴지도.

코로나가 꺾이면서 회식도 많아지고 술자리도 늘었다. 누가 뭐래도 소주는 서민의 가장 좋은 동반자다. 부디 동반자가 곁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소주 한잔 하실래요?” 이 말이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부담 없는 인사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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